
이 글은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왜 저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나요?"
몇 년째 상담을 받고 있는 내담자가 어느 날 조용히 이렇게 물었습니다.
질문을 듣는 순간,
한참을 멈춰 서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 이면에는 오랫동안 그녀를 따라다닌 훨씬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할 이유가 있을까?"
그녀는 전 남편의 가스라이팅과 폭력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녀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을 겁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까지 미움받아야 할까."
반복적인 폭력과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내가 문제라는 믿음,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신념이 서서히,
그러나 깊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은 관계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
자기 가치감이 무너질 때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이것을 자기 개념(self-concept)의 손상으로 봅니다.
건강한 자기 개념이란 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기본적인 감각입니다.
이것이 흔들릴 때,
사람은 끊임없이 외부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거나
반대로,
아예 확인받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먼저 자신을 지워버립니다.
그녀의 질문은 후자였습니다.
좋은 관계 앞에서 오히려 두려워지는 것.
이 사람도 결국 나를 실망할 거라는 예상.
그래서 좋아진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것.
나는 그 마음을 낯설지 않게 느꼈습니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고,
아무리 애써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던 시간.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나를 지워버리던 시간.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모습에서 나를 떠올린다고요."
이유 없이 좋아한다는 것
그녀의 질문 앞에서 나는 솔직했습니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믿음.
잘해야만,
실망을 주지 않아야만,
충분해야만 받아들여진다는 오래된 공식.
그 공식이 내면 깊이 새겨진 사람에게는 이유 없는 호의가 오히려 낯설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관계의 진짜 온기는 조건 이전에 있습니다.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게슈탈트 치료에서 말하는 나와 너(I-Thou)의 만남이 바로 이것입니다.
상대의 가능성이나 역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존재 그 자체를 만나는 것.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을 경외하는 눈으로 보고 있어요."
부서지고 깨어졌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
한 걸음도 쉽지 않은 길을 매일 걸어가는 사람.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내면에 스며들기까지
그녀가 용기를 내어 건넨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오히려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무서워했던 질문을 꺼낼 수 있을 만큼,
이 관계를 믿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치감은 한 번의 말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복된 안전한 관계 경험 안에서,
조금씩 새로운 믿음이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유 없이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 감각이 언젠가 그녀 안에서 자기 자신을 향한 목소리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아. 나는 내 존재를 귀하게 여겨."
마무리
혹시 지금,
누군가 잘해줄 때 오히려 불안해진 적이 있으신가요.
이유를 찾으려 하거나,
언제 실망할지 먼저 걱정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 불안이 어쩌면,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던져온 질문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 질문에 조용히 답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찾아도 됩니다.
지금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당신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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