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어요."
상담실에서 이 말을 꺼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었던 그 사람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닮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버린 날.
그 고통은 꽤 독특한 종류입니다.
그는 직업 특성상 긴 시간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만남은 늘 짧았고,
이별은 늘 반복되었습니다.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고,
그는 붙잡지 못한 채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바다가 좋아서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그냥, 혼자가 익숙해졌어요."
그 말 뒤에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은 곳에서 다른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배를 타던 아버지를 원망했어요.
그 아버지 곁에서 늘 외로웠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그녀에게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닮아 있는 거예요."
왜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닮게 되는가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합니다.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이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에서 본 관계의 방식을 몸으로 먼저 배웁니다.
언어 이전에, 의식 이전에.
그래서 아무리 머리로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몸과 감정은 이미 익숙한 패턴대로 반응합니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이것을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관계에서 충분히 처리되지 못한 감정 — 원망, 슬픔, 그리움 — 이
현재의 관계 안에서 반복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는 슬픈 눈으로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과,
지금 자신을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을 겹쳐 보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 엄마의 목소리가 있어요.
'그만해… 그만 상처 줘…' 그 말이 계속 들려요."
그 목소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를 가장 아프게 찌르고 있었습니다.
알아차림이 반복을 멈추는 첫 번째 자리
반복되는 패턴 앞에서 우리가 흔히 하는 것은 자책입니다.
왜 또 이러는 거지, 왜 나는 바뀌지 않는 거지.
그러나 자책은 패턴을 바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수치심을 더해,
그 패턴 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게 만들 뿐입니다.
변화는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아… 당신은 아빠와 닮은 당신이 싫었던 거군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많이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자책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자신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본 사람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반복이 멈출 수 있는 첫 번째 자리입니다.
패턴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는 것.
그리고 그 패턴 뒤에 얼마나 깊은 두려움과 그리움이 있었는지를 느끼는 것.
이것이 게슈탈트 치료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마무리
그 눈물 속에서 저는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그가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는지,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를.
닮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혹시 지금,
절대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누군가의 모습이 자신 안에서 보이시나요.
그 발견이 자책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오래된 패턴은 비로소 바뀌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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