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 몸집을 키워야만 했습니다.
물리적인 몸이 아니라, 존재감, 목소리, 태도. 무서운 아빠 앞에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이 많은 언니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고 여린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큰소리를 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생존을 위한 그녀만의 전략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투처럼 살아야 했던 시간
어린 그녀에게 매 순간은 전투였습니다.
집 안의 공기가 조금만 달라져도 온 신경이 곤두섰고,
누군가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엄마가 다칠지도 몰라.'
'지금 버텨내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아.'
그녀는 그렇게 살아남아야 했고, 그렇게 살아냈습니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어른이 된 소녀
시간이 흘러,
그 소녀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강한 사람이라 말했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너무 낯설었습니다.
가족의 말투, 남편의 표정,
아이의 울음소리조차 자신을 향한 공격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면
이유도 모른 채 가슴이 벌렁이고, 숨이 막히고,
이성을 잃은 채 크게 소리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는 비난을 쏟아부었습니다.
"왜 또 그러는 거야."
"이건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잖아."
"제발 좀 바뀌자, 제발..."
변하고 싶은데, 달라지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자신에게 자꾸만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책망하며, 그녀는 점점 더 지쳐갔습니다.
상담자로서, 나 자신으로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저를 지켜야만 했던 아이였습니다.
다만 방식이 달랐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저는 높은 벽을 세우고 그 안에 나를 숨기는 방식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을 지켜야 했습니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이것을 창의적 적응(creative adjustment)이라고 부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이가 찾아낸 최선의 생존 방식.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
그 시절 그 아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 몸 안에서 여전히 작동합니다.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아이의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생명의 에너지
저는 그녀에게,
그리고 곧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널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그 에너지는 나쁜 게 아니야.
그건 너를 살게 했고,
자라나게 했고,
지금의 너를 만들어준 생명의 에너지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조용히, 그러다 이내 꺽꺽 소리를 내며.
오랫동안 참아온 울음이었고,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자신을 조금 덜 미워하게 만들었다고.
마무리
변하지 못해도, 바뀌지 않아도
자기를 이해하려는 시도 하나가 삶의 방향을 조금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그 소녀가 사용했던 에너지는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절, 살아남기 위한 최선이었습니다.
이제 그 소녀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강요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을 조용히 알아봐 주는 시선입니다.
그 어린 소녀가, 이제는 안심하고 쉴 수 있기를.
자기 자신에게 더 이상 소리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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