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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상담

"나는 상담자가 아니라, 함께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by busangestalt 2026. 4. 17.

 

 

이 글은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출근길이었다.

창밖으로 아직 덜 깬 하늘이 흐르고,

이어폰에선 라디오헤드의 Fake Plastic Trees가 흘러나왔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늘 이 노래 앞에서 무언가 멈춰 서곤 했다.

"It wears her out, it wears her out..."

지친 목소리가 속삭이듯 반복될 때,

그 말이 마치 나를 향한 문장처럼 들렸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숨죽인 채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한 문장이 열어놓은 것

"슬픔의 강을 바라보고 있어요...."

한 문장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 그 강.

멈춰선 채, 조용히 그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

 

그 메시지를 읽고 나서, 나는 잠시 멈췄다.

"그녀는 내가 같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아."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내 안의 어딘가를 천천히 건드리고 간 느낌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그렇게 전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 교환이 아니었다.

이것은 접촉(contact)이었다.

게슈탈트 치료에서 접촉은 기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진짜로 존재할 때,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녀의 한 문장은 그 접촉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거리(distance)와 현존(presence) 사이에서

상담자는 늘 조금은 멀리 있어야 한다고 배운다.

중립성, 객관성, 적절한 경계.

이것들은 분명 임상적으로 중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나는 그날 아침, 다른 자리에 서고 싶었다.

마음 깊은 곳에 흐르는 그 강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발끝을 담그고 같이 서 있는 존재로.

 

이것은 경계의 붕괴가 아니다.

이것은 현존의 선택이다.

게슈탈트 치료에서 치료자의 현존은 관계 안에 자신을 진짜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역할 뒤에 숨지 않고,

지금 이 관계 안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허용하는 것.

누구의 강도 대신 흘러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흐름 앞에 같이 서 있을 수는 있다.


상담자의 두려움을 허용하는 것

두려움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두려움 앞에서 나도 조금 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는 있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상담자는 흔히 내담자의 두려움 앞에서 안정된 존재여야 한다고 믿는다.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담아주어야 하고, 버텨야 한다고.

그러나 그 안정이 진짜 현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 내담자는 그것을 감지한다.

 

함께 두려워하는 것은 미숙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방식이다.

상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살아있는 상태로 관계 안에 가져올 때,

내담자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도 살아있어도 된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다.

그것이 게슈탈트 치료에서 말하는 '나와 너(I-Thou)'의 만남이다.

역할과 역할이 아닌, 존재와 존재의 접촉.


상담자 자신의 강

그날 아침 나는 그녀의 강만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강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은 중요한 알아차림이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내면 상태를 외면할 때,

공명(resonance)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명은 두 개의 진동이 서로 만날 때 일어난다.

한쪽만 울려서는 공명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슬픔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 접촉을 허용했다.

그것이 그날 아침, 내가 심리치료사로서 한 가장 정직한 작업이었다.


마무리

슬픔 속에서도 누군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치료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경험 중 하나다.

그것은 기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살아있는 채로 관계 안에 가져오고,

내담자의 자리에서 함께 머무를 때 —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날, 상담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그녀의 강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치료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상담자라는 역할은 때로 보호막이 된다.

그 보호막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두려움 앞에서 같이 서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오늘 다시 확인한, 내가 되고 싶은

심리치료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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